현대시와 언어학
현대시와 언어학
1. 소쉬르의 언어학
자의적 변별적 기호 체계
20세기 문학 이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언어학자는 스위스 태생의 소쉬르(F. daussure)이다. 현대시와 언어학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피기에 앞서 그의 언어학이 보여주는 특성을 간단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에 의하면 언어는 자의적 변별적 기호 체계로 정의 된다. 여기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언어의 특성으로는 언어가 기호라는 점, 언어적 기호는 자의성을 띤다는 점, 그리고 변별성과 체계성을 띤다는 점이다. 좀더 부연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언어가 기호라는 사실은 모든 기호가 그렇듯이 언어 역시 어떤 지시물을 대신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예컨대 '산'이라는 낱말은 산이라는 구체적 대상을 지시하거나 아니면 이 대상이 추상화된 개념을 대신한다. 그런 점에서 언어적 기호는, 그의 용어에 따르면, 말소리와 개념으로 구성된다. 말소리를 그는 시니피앙이라고 부르고 개념을 시니피에라고 부른다. 시니피앙은 흔히 기표로, 시니피에는 기의로 번역된다. 이 기표와 기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로 존재한다.
그러나 언어적 기호의 경우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다른 기호와는 구별되는 특성을 보여준다. 기호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그 가운데 이른바 징후와 언어적 기호의 차이를 살피기로 한다. 이마에 열이 있다는 신체적 징후는 감기라는 개념을 지시한다. 그러니까 이때는 기표와 기의 사이에 필연적 관계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마에 열이 난다는 현상은 필연적으로 그가 감기에 걸렸거나 감기에 걸리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이라고 소리를 내는 것과 산이라는 대상 혹은 개념 사이에는 아무 필연성도 없기 때문이다. 같은 대상을 놓고 영국에선 mountain이라고 소리를 내며 프랑스에서는 mont라고 소리를 내며, 나아가 중국에서는 또 다르게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소쉬르는 이렇게 기표와 기의 사이에 어떤 필연성도 없는 관계를 이른바 자의적 관계라고 부른다.
그러나 언어적 기호의 경우 기표와 기의는 비록 자의적인 관계에 있기는 하지만,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도전의 앞뒤 관게, 곧 일정한 체계를 소유한다. 모든 체계 가운데 가장 단순한 것으로는 이른바 2항 체계를 들 수 있다. 언어가 보여주는 체계성은, 그런 점에서 , 기표와 기의라는 2항 체계를 띤다. 물론 이런 사실은 좀더 발전하면 기표와 기표의 체계, 기의와 기의의 체계로 확장된다.
낱말이 의미를 환기하는 것은,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자의성을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낱말 밖에 있는 구체적 대상을 지시하기 때문이 아니다. 모든 어어적 기호는 기호 밖에 있는 구체적 대상이나 현실과는 관계없이 자율적으로 의미를 생산하다. 이때 자율적이라는 말은 언어적 기호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관계, 곧 체계가 생산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소쉬르는 변별성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나'라는 낱말의 의미를 생산사는 것은 '나'를 뜻하는 구체적 인물을 지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언어 체계속에서 이 낱말과 변별되는 '너'라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시하는 것일까. 이 낱말이 '나'라고 말하는 모든 사람을 지시한다면 그것은 객관적 대상을 소유하는 게 아니다. 이 '나'라는 낱말은 언제나 '너'라는 낱말과의 대립성 혹은 음운론의 용어인 변별성에 의해서만 의미를 생산한다.
소쉬르에 의하면 또한 우리의 언어활동은 이른바 바(parole)과 언어(langue)로 구성된. 말이란 일상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실제로 수행하는 현실적 발언을 의미하고, 언어란 이런 발언의 배후에 있는 보이지 않는 체게를 의미한다. 따라서 말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특성을 띤다면 언어는 이와는 달리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특성을 띤다. 소쉬릐에 의하면 말이 있고, 다음에 언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언어가 먼저 있고, 다음에 말이 있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일상적인 발언은 문법체계가 있음으로써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언술의 표면에 드러나는 단편적이고 표면적인 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 숨어 이 말을 가능케 하는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언어이다. 모든 개별적인 말이 말로서 수행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문법체게를 따라야하기 때문이다.
현대시에의 영향
이상과 같은 그의 주장은 매우 과학적이며 현대 무학 이론, 특히 구조주의 문학 이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현대시의 이론에 영향을 준 것으로는 언어체계를 수평과 수직의 관계로 해명한, 이른바 통합적 관계와 계열적 관계에 대한 견해이다. 소쉬르가 언어학자로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시까지 언어연구를 지배하던 통시적 방법을 극복하고 공시적인 방법을 개척한 공로 때문이다. 이 공시적인 방법이란 언어 체계를 하나의 구조로 인식하면서 출발한다. 소쉬르는 그것을 통합적 관계와 계열적 관계로 나눈다. 통합적 관계란 언어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시간적 질서를 따르고, 서로 교환될 수 없고, 언어의 표면에 나타나며, 서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통합적 관계는 시간적 계기성을 따르며, 수직의 축 위에서 진행된다. 예컨대, '소가 짐을 운반한다'는 문장이 그렇다. 이 문장에서 언술을 구성하는 세 요소는 위에서 지적한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요소들은 수직의 축, 곧 계열적 관계에 있어서는 시간적 질서를 따르지 않고, 서로 교환될 수 있으며, 언술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서로 유사한 관계에 있게 된다. 계열적 관계에 있는 요소로는 '소'의 경우 '당나귀, 노새, 말'등이, '짐'의 경우 '꼴, 덤불, 장작'등이, 운반한다'의 경우 '나른다, 옮긴다, 싣고 간다'등이 있다. 요소들이 통합적 관계에 있는 것을 통합체, 계열적 관계에 있는 것을 계열체라고 부른다.
2. 야콥슨의 시학
언어적 시적 기능
시적 담론이 보여주는 기호학적 특성은, 이 땅에도 널리 알려진 것처럼 러시아 태생의 언어학자인 로만 야콥슨(Roman Jacobson)에 의해서 과학적으로 해명된다. 야콥슨은 1915년부터 1920년까지 러시아의 모스크바 언어학회를 주도한다. 그후 1927년부터 1938년까지 체코의 프라그 언어학회의 부회장으로 활동한다. 그는 그후 미국으로 옮겨와 1940년대에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50년대와 60년대에는 하버드 대학과 M.I.T. 에서 동시에 강의를 했으며,70년대에는 다른 여러 대학 및 연구소에서 강의와 연구를 했다. 그는 러시아 형식주의와 구조주의의 대표적 이론가로 꼽힌다.
시의 연구에서 그가 보여준 두드러진 특성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시적 텍스트에 대한 면밀한 구조분석, 다른 하나는 언어의 시적 기능에 대한 일반 이론이다. 전자는 구조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와 함게 수행한 [보들레르의 고양이 분석]이 대표적이며, 후자는 1958년에 발표한 [언어학 시학]이 중심을 이룬다 이 논문은 언어의 시적 기능을 새롭게 해명한 것으로 소쉬르의 언어학에 토대를 두고 둔다.
이 논문에서 야콥슨은 언어적 교통을 가능케 하는 여석 가지 요소를 나누고, 그에 상응하는 여섯 가지 언어적 기능에 대해 말한다. 전자로는 발신자, 수신자, 문맥, 접촉, 코드, 메시지 등 여석 요소이다. 모든 언어적 교통은 이 요소들이 존재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러나 이상의 여섯 요소 가운데 어느 요소가 강종되느냐에 따라 언어의 기능은 달라진다. 발신자를 지향하는 경우에는 정서적 기능, 수신자를 지향하는 경우에는 사역적 기능, 문맥을 지향하는 경웽는 지시적 기능, 접촉을 지향하는 경우에는 친교적 기능, 코드를 지향하는 경우에는 메타언어적 기능이 나타난다. 시에서 읽을 수 있는 언어의 기능은, 그에 의하면, 이상의 다섯가지 기능이 아니다. 언어의 시적 기능은 언어적 교통을 구성하는 나머지 한 요소, 곧 메시지를 지향할 때 드러난다. 이런 언어의 기능을 그는 시적 기능이라고 부른다.
메시지를 지향하는 언어란 무엇인가. 메시지란 흔히 일컬어지는 언술 내용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여기서는 예컨대 '하늘은 푸르다'고 말할 때, 말하는 행위자체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 언술 속에는, 찬찬히 분석하면, 발신자, 수신자, 문맥, 메시지가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이 언술은 '나는 하늘은 푸르다고 너에게 말한다'라고 분석된다. 문맥이란 여기서 발신자와 수신자가 서 있는 환경, 혹은 발신 자가 지시하는 대상을 의미하고, 메시지란 그런 말을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니가 쉽게 말해서 메시지를 지시하는 언어란 언술의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행위를 중시하는 태도를 뜻한다.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도입하면 그것은 기표와 기의의 심연이 깊어지는 관계, 마침내 기의가 아니라 기표의 투명성이 강조되는 경우를 뜻한다.
그러나 한 편의 시는 이런 시적 기능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른 언술들이 그렇듯이 시적 담론 속에도 위에서 말한 다른 기능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역시 지배적인 것은 이른바 시적 기능이다. 그런 점에서 한 편의 시는 시적 기능을 나타내는 언어가 중심이 되면서 다른 기능으 ㄹ보여주는 언어와 일종의 위계적 질서를 형성한다. 이때 지배적인 요소를 구조주의자들은 지배소라고 부른다.
또한 야콥슨은 언어적 기능의 위계적 질서를 중심으로 인습적인 시의 장르를 검토한다. 그에 의하면 서사시는 전형적으로 3인칭 담론을 지향하면서 지시적 기능과 동시에 시적 기능을 내포한다. 그러나 서정시는 1인칭 담론을 지향하면서 시적 기능을 중심으로 정서적 기능, 혹은 표현적 기능을 활성화한다.
그가 말하는 시적 기능이란 크게 세 가지 인자로 요약된다. 그것은 첫째로 메시지, 곧 언술행위 자체를 지향하는 것, 둘째로 지시적 기능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 셋째로 모든 언어학적 수준에서 이에 대응되는 구조를 잠재적으로 지향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학적 수준이란 음성학, 형태론, 어휘론, 통사론, 나아가 의미론을 포함한다
시와 비시의 차이
이런 시적 기능은, 그에 말에 따르면, '기호의 투명성을 중대시킴으로써 기호와 대상의 기본적인 양분성을 심화시킨다.' 이런 시적 기능은 회화, 영화, 발레, 음악 등에 나타나기 때문에 단순한 언어학이나 시학이 아니라 이른바 일반 기호학의 문맥에서 연구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시와 비시의 차이에 대한 질문은 근본적으로 언어학적 질문으로 환원되며, 따라서 언어학의 용어로 기술될 수밖에 없다. 시는 시만의 독특한 언어적 속성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언술 행위 자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시가 아닌 것들과 구별 된다.
시적 담론의 구조가 일상적 담론의 구조와 다른 점 역시 언어학을 토대로 해명된다. 소쉬르에 의하면 일상적 담론은 수직의 축에서 낱말들을 선택하여 수평의 축에서 결합한다. 말하자면 계열체에서 선택된 낱말들을 접촉성의 원리라는 말로 규명한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일상적 언어 체계가 보여주는 선택의 법칙은 수직의 축에 있는 등가성의 원리를 따른다. 야콥슨은 이런 사정을 선택의 축과 걸합의 축이라는 용어로 단순화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 담론의 경우에는 이런 법칙이 파괴된다. 왜냐하면 시의 경우 그 낱말 결합의 법칙이 등가성의 원리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권기호 교수가 인용한 바 있는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는 시행의 경우 '꽃'이라는 낱말과 '붉은 울음'이라는 낱말과 '울었다'는 낱말은 서로 등가성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적 기능이란, 야콥슨의 정의에 따르면, 등가성의 원리를 선택의 축에서 결합의 축으로 투사한다. 쉽게 말하면 모든 시는 접촉성의 원리가 아니라 등가성의 원리에 의해 낱말들이 결합된다. 그는 이런 기능이 낱말들의 결합, 곧 통사론의 수준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음성학, 음운론, 형태론, 어휘론, 나아가 의미론의 수준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런 시적 기능과 그 보기를 『시작법』(문학과 비평사)에서 설명한 바 있고, 최근 이형기 교수 역시 『시에 대한 언어학적 접근』(월간『현대시』, 1992.6)에서 그 원리를 설명한 바 있다.
3. 리파테르의 시학
초독자의 개념
야콥슨의 일반 이론과, 특히 시작품에 대한 미세한 구조분석은 미국의 경우 많은 동조자들을 생산했다. 특히 리파테르(M.Riffa-terre)는 야콥슨의 영향을 받고, 자기대로의 새로운 시학을 강조한 이론가로 꼽힌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시의 기호학』은 유재천 교수에 의해 번역된 바 있다. 그는 탁월한 논문 [시적 구조에 대하여 : 보들레르의 고양이에 대한 두 가지 접근법](1966)을 통해 야콥슨을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보들레르의 『고양이』를 분석하면서 야콥슨과 레비-스트로스가 밝힌 많은 언어적 자질들은 문학적으로 활용되지 않으며, 따라서 문체론이 수반되지 않는 구족 언어학은 적절한 미적 요소를 분별함에 실패한다고 주장한다. 야콥슨의 텍스트 분석이 보여주는 난해한 구석에도 그 대응구조를 적용함으로써 분석의 적절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는 다른 구조주의자들처럼 전기적 비평을 혐오한다. 반면에 그는 독자 반응에 토대를 두는 비평을 주장한다. 그리고 많은 미국 구조주의자들은 리파테르와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그가 말하는 독자란 이론적 불모성보다는 기술 비평을 지향하는, 따라서 텍스트가 환기하는 문학적 의미와 미적 가치에 유념하는 세련된 독자를 의미한다. 시를 부분으로 나누는 일과 분석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지각, 특히 적절한 양상에 대한 지각에 의존한다. 여기서 말하는 적절성이란 음운론의 용어로느 ㄴ관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관여적 자질이란 음운론의 용어로는 관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관여적 자질이란 텍스트가 미적 효과를 생산하거나 문학적 의미를 생산함에 관여하는 요소들의 자질을 의미한다. 이런 요소들은 흔히 내용상 분명치 않은, 따라서 무어라고 단언할 수 없는 모호성을 거느린다.
이렇게 관여적이 결정적인 텍스트이 양상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이른바 '초독자(superreader)'의 개념을 내세운다. 이런 독자는 작품이 전개되는 시간성을 중시하면서, 특히 작품 속에 있는 비문법적인 양상에 대해 고도의 감수성으로 반응한다. 그는 이런 이론적 구성을 토대로 텍스트가 환기하는 지각적 특수성, 곧 텍스트이 미적 효과나 문학적 의미를 생산하는 관여적 양상에 대한 지각을 동반하는 의미있는 순간에 초점을 두고 미세한 형식 분석을 수행한다. 리파테르의 관점에 의하면 텍스트는 독자의 반응을 결정하고, 이런 반응이 또한 언어적 문학적 지식을 결정한다. 초독자는 고도의 미적 감수성과 동시에 다양한 정보를 소유한 인간이다.
리파테르는 그의 『시적 구조에 대하여』가 불어로 번역되었을 때 거기에 맞물리는 독서의 세 가지 국면을 첨가했다. 첫째는 독자가 텍스트 속에 전개되는 사태를 충실히 따르는 국면이다. 둘째는 독자가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모순적인 구절들을 소급해서 검토하는 국면이다. 셋째는 독자가 총체적이고 기억할 만한 내용들을 재독하는 국면이다. 이상 세 가지 국면들은 역동적인 독서의 핵심이 된다.
하이포그램과 모체
그가 문체론에서 강조한 이런 세 가지 독법은 의미론을 다루는 경우 두 가지 국면으로 환원된다. 첫재른 이른바 발견적(heuristic)독서가 있다. 이런 독서는 텍스트의 표면에 나타나는 언어적 비문법성에 유념하면서 텍스트가 보여주는 선형적 모방적 양상에 관심을 둔다, 둘째는 해석적(hermeneutic)독서가 잇따. 이런 독서는 텍스트의 수직적 기호론적 양상, 특히 텍스트의 심층에 있는 구조적 하이포그램(hyporam)과 모체(matrix)에 소급해서 초점을 둔다. 하이포그램이란 텍스트 속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이미 존재한 단어나 구, 상투 어구, 묘사체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모체란 시가 생산되는 단순한 단어나 문장을 의미한다. 이상의 두 가지 독법은 일련의 대립 양상을 보여준다. 가장 바람직한 독밥은 말에서 언어로, 모방론에서 기호론으로, 비문법성에서 문법성으로, 통합체에서 계열체로, 변이체에서 모체로, 표면에서 심층으로 진행하는 방법이다.
리파테르가 강조하는 이른바 기호론적 '이중적 독서'는 독자에게 텍스트의 여러 수준에서의 생산적이고 지속적인 왕래를 강요하며, 그에 의하면 이런 과정이 문학성을 보장한다.
리파테르가 그의 관심을 문체론에서 기호학으로 돌린 것은 1970년대 초이다. 이때 그는 형식주의적 전통에 따른 자율적 텍스트의 면밀한 분석을 거부하는 일 역시 거부하던 자신의 입장마저 포기한다. [시의 기호학](1979),[텍스틔 생산](1979), 기타 여러 눈문을 통해 그는 물론 문학사, 수용 비평, 면밀한 독서라는 그의 입장을 유지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 무렵 그가 보여주는 변화는 미시구조가 아니라 거시 구조에 대한 이론적 정립이다. 예컨대 서구 문학 일반에 적용될 수 있는 시학의 이론적 모델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시적 담론을 읽으며 그가 마주친 난해한 표면적 자질, 혹은 비문법성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심층구조론 혹은 시의 문법론을 제기한다.
일련의 복잡한 변화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한편의 시는 단일한 단어나 문장, 곧 모체에서 도출된다. 이 모체는 확장되거나 모벙적 지시적 언어로 전환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경과하면서 모체는 왜곡되며 또한 모호성을 유발한다. 지시적으로 시를 읽는 일은 내용과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수평적이고 표면적으로 진행된다. 소급적이거나 해석적으로 시를 읽는 일은 형식과 형식적 의미에 유념하면서 등가성의 체게를 수직적으로 오르내리며 진행된다. 모방적 수준에서 나타나는 비문법성은 기호학적 수준에서는 문법성을 획득한다.
시를 읽으며 독자가 마주치는 가장 난해한 순간이야말로 모체가 결정적으로 암시되는 때이다. 모체가 앞서 나온 다른 텍스트, 곧 하이포그램과 연결되거나 그것을 여과한 것이 ㄹ때 독서는 언어적 능력(competence)과 동시에 문학적 능력에 의존한다. 이런 점에서 리파테르가 말하는 독자는 문학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시의 변형생성적 기호학적 모델 속에서 모체는 변형, 곧 복잡한 하이포그램, 확장, 전환에 종속되며, 이런 변형이 텍스트를 생산하며 적절한 수용이 무엇인가를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