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리 봉오리 두메산골...
- 올 추석엔 우리 예쁜 동서님과 다빛이가 파트너가 되었다.
밀가루 옷을 입히고 계란을 입히고 튀김도 만들고 전도 붙이고...
우리 다빛이 올 추석 정말 수고 많이했다.
다빛이 솜씨가 들어간 추석음식을 싸갖고 큰빛이 면회 가는 길
명월리를 지나 다목리를 지나
또 산을 넘고... 봉오리로 간다.
봉오리 봉오리...
구비구비 산을 넘고 계곡을 지나 가도가도 끝이없는 길.
봉오삼거리!
산골마을엔, 작은 상점들이 서너개가 있고, 봉오초등학교가 있고.
반갑다! 그래, 여기가 봉오리구나!
우리 큰빛이가 있는 곳은 여기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는 구나!
정말 시골이구나!
정말 산골이구나!
까마귀떼가 모여있는 정말 산골이구나!
어쩜... 멀기도 정말 멀구나!
- 가족을 보자마자 필승! 경례를 붙이더니
두 팔을 벌려 엄마를 껴안아주는... 큰빛!
이제부터 싫든 좋든 여기가 2년동안 머무를 자기 집이라며... 정붙이고 잘 있다고 안심시켜주는 큰빛.
- 집에서 사용하는 큰빛이 수저셋트를 가져왔다.
자신의 수저셋트를 보자 빙그레~ 웃는다.
- 지금 큰빛이가 열심히 먹고 있는 것은 우리 가문의 특별음식이다.
돼지 등뼈를 고추장 양념으로 범벅을 해서 먹는, 일명. "사댕이!" <--- 우리 집에서는 이 음식을 사댕이라고 부른다.
내가 시집와서 처음 시댁식구들과 둘러앉아 뼈 하나씩 들고 먹는 모습에 많이도 웃었던... 사댕이.
우리 집안에서는 이 음식만 하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상으로 달려든다.
사댕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모두 군대에 갔다.
그래도 시어머니께서 특별히 만들어주신 사댕이를 가져오니까 큰빛이... 말도 않고 뜯어먹기에 바쁘다!
많이 먹고 싶었다고... 진짜진짜 사댕이 생각 많이 했다고... ㅋㅋ
- 어렸을 때부터 동생 사랑이 끔찍하던...
초등학교 시절 비오는 날이면 제 동생 비 맞을까... 자신은 옷이 흠뻑 젖은 채로
동생을 우산 씌워 데리고 오던 큰빛이는 지금까지도 다빛이를 챙기는 것을 잊지 않는다.
- 이 녀석, 조교라더니...
사진 찍는다고 하니까. 조교폼이 나온다. ㅎㅎ~
- 올 추석, 많이 쓸쓸했다.
복작거리던 집안에 빠져나간 흔적이 역력한 아이들의 존재를 실감케 하는 추석명절이었다.
돌아오는 길... 구름에 가리워진 태양이 빛을 발산하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세월이 이렇게 흘렀구나.
군인 면회라고는 친정오빠에게 가 본 적 밖에 없는 나였는데...
어느새, 내 아들의 면회를 다녀오고...
기억도 가물가물한 내 나이 스무살의 경기도 현리는 군인 간 오빠에게 가는 길이었다.
엄마와 오빠 사이에서 용돈을 주고 받게 해주는 심부름꾼은 오로지 나였었다.
그 시절의 면회는 시골버스를 타고 탈탈거리는 면회길이 지루하기만 했었다.
할 말이라봤자 거의 없는 형식적인 안부 말이 오고가는 오빠와 나는...
괜스리 군부대 근처 다방에 앉아 차 한잔 홀짝거리면서 엄마가 준 용돈을 건네주고...
일찌감치 돌아서 집으로 오는 길에는 피로만이 얹혀져서 꾸벅꾸벅 졸며 풍경바라기는 다 놓치기 일수였다.
우리 가족 모두는 오빠가 군에 있을 동안 휴가마저도 오빠의 군부대 근처로 가야만 했다.
싫어도 따라가야만 했던 지긋지긋했던 휴가, 나에겐 발언권이라고는 있을 턱이 없었다.
그 때 지금 남편을 만나고 있는 것을 눈치 챈 엄마는
다 큰 딸자식을 며칠 동안을 집에 혼자 놔두는 것도 마뜩해하지 않았고
용돈으로 꼬시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면서 하여튼 별 수단을 다 피워서 나를 데려가고는 했었다.
극성맞기로 유명했던 우리 엄마는 항아리 같은 큰 가스렌즈를 갖고 가서 닭이며 밥이며 온 갖 음식을
부대에서 1박 2일 동안 외박나온 아들의 위를 채워주기에 온 정성을 다 들인다.
휴가 둘째 날은 오빠와 함께 지내는 내무반 일원인지... 군복입은 군인들이 대여섯명 따라나왔고.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하루 세끼도 모자라 간식거리까지 오빠를 포함한 대여섯명의 군인들에게 해 먹이기 바빴다.
오빠와 함께 온 군인들이 있을 동안 나는 아무리 더워도 텐트 안에서 나오질 않았다.
집에서도 오빠는 친구들이 오면, 내 방에서도 나오지도 못하게 했으니까...
아무튼 오빠가 군대에 가기 전이나 가고나서나 감옥살이도 이런 감옥살이가 없었다.
울퉁불퉁한 돌이 있는 곳에 텐트를 치고 집에서 가져간 얇은 이불을 깔고 덮고 자는 잠자리가 편하지도 않았을 텐데도
화려(?)했던 오빠의 1박 2일의 외박이 끝나고도 우리는 현리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꼬박 2박 3일의 휴가 기간을 채우고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지나고 보니... 모두가 추억이다.
그 때는 극성맞다고만 생각했던 우리 부모가 만들어준 추억이 지금 생각해보니 자식사랑이 지극했던 부모였다는 걸...
내 아들 군에 보내고 나서 하나하나 생각이 난다.
ㅎㅎ~
어쩜... 울 엄마, 울 아부지... 하던 말이 생각난다.
말대꾸 톡톡 해대는 너랑 똑같은 딸 키워봐라. 속이 타나 안 타나...
이제는 집에 있겠다는 딸 아이를 갖은 수단을 다 부려 꼬셔서는 군인 간 아들 면회를 데려가는 내가 웃기기만 하다.
오고가는 면회길에 이런 저런 생각에 그저 웃음이 난다.
2008. 9. 14 추석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