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항아리.../시시한 수필 -

아주 간절한 여행-아, 강원도 정선-

문선정 2007. 1. 4. 05:13

아주 간절한 여행

-아, 강원도 정선-

 

 -문숙자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면 그 마음은 간절해야 한다.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비린내가 모여 사는 싱크대, 잔득 어질러진 내 책상,

이불과 베개가 제 멋대로 뒤엉켜있는 침대,

소파 위에 대충 걸쳐 앉았거나 누워있는 신문지,

짧은 휴식으로라도 지금은 간신히 평안해진 어제 피곤했던 신발들,

이미 익숙해진 이런 케케묵은 생활의 냄새를 가끔씩 털어내려면,

먹고 자고 뒹굴던 곳에서 잠시라도 몸만 쏙 빠져나가 보자.

단 하루라도 좋다. 그래 여기를 떠나보는 것이다.

점점 가난해지는 내 기분에게 적당한 사치의 바람을 쏘여주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 있던 자리로 되돌아와,

싱크대의 비린내를 없애고, 어질러진 책상을 정돈하고,

제 멋 대로인 침실을 정리하고, 구겨진 신문이 재활용 되도록 도와주고,

늘어지도록 심심했던 신발들의 질서를 잡는다면, 이만하면 괜찮은 여행이지 않은가.

그래 괜찮다. 괜찮다는 것만으로도 내 자신이 조금은 근사해 진 것 같지 않는가,


정선은 여행이 아닌 어떠한 꺼리를 만들어서라도,

언제고 다시 들러보고 싶었던 곳이다.

그래서인지 다시 찾은 아우라지 강을 비롯한 정선 땅이 낯설지가 않음은,

세상 모든 것들과 함께 하늘도 붉어지는 지난 해 가을 날 해질녘에,

사랑의 전설이 안타까이 흐르는 강물을 한 바가지 떠갖고 와서,

조금씩 아껴 쓰던 향수가 아직 마르지 않아서일까.

나는 그리 많은 곳을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중 어디가 제일 좋더냐고,

가끔씩 훌쩍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힘찬 강물이 휘감아 치는 징검다리를 줄 지어 건너는 뒷모습들이,

정말이지 눈물 나게 아름다운 강원도 정선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어요!

라고 말하고 싶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 멈춰 섰을 때 꼭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늘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거나, 이미 희미해진 사람이거나,

혹은 풍경이 안겨주는, 그 어떤 이미지로 인하여 어릿하게 생각나는 사람.

꼭 그런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풍경을 가슴속에 오래오래 넣어두었다가,

언제고 그 사람과 함께 나란히 서서 예전에 품었던 풍경을,

물감처럼 풀어놓으리라는 이런 간절한 여행 중엔,

사소한 스침에라도 선뜻 가슴이 정지된다,

정선의 오일 장터인 농협 앞에서,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는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을 보고,

나는 왜 노환으로 집안에만 계시는 어머님이 생각났을까,

여행 중에 특별하게 일어난 보고라도 해야 하는 듯이,

위로의 전화라도 불쑥 해야지 했을까.

정지된 그림으로만 얼핏 보아서는 결코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다.

지팡이를 움켜잡은 두 손에 세월을 담은 선명한 얼굴을 올려놓은,

등 굽은 노인들의 모습만으로도 내 속이 아리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고개를 넘고 넘어서,

곤드레 나물이며 취나물이며 잡 나물의 알싸한 냄새가 진동하는 장터에서, 

처음 본 객지 손님에게 입이 터지도록 쌈밥을 사서 먹여주는 묵 장수 아주머니.

정선 장에 왔으면 갖은 부침개와 처음 맛보는 부끄미를 맛보는 즐거움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창극 가락의 울림에 눈물 흘리며 뒤돌아보게 만드는 이곳에,

정작 와야 될 사람을 어둡고 쓸쓸한 곳에 홀로 두고 온 것만 같아,

가뜩이나 아린 속을 아프도록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

진짜배기 강원도 산간에서 나온 나물이나 좀 사오라는, 어머님께

나물장수 부부의 너털하고 후한 인심까지 전해 드렸더니,

다음엔 또 언제 가느냐며 벌써 정선 갈 준비를 서두르시는 어머님께,

뭐 그리 대단한 위로가 될까마는, 어머님을 동반한 여행도 슬며시 기대해 볼 만하다.

그래, 여행은 이렇게 소소한 추억과 느낌만으로도 나만의 취향으로 다듬어 지는 것이다.


5월의 여행길엔,

달리는 차창에 손바닥을 내 밀고 부딪치는 바람을 만져보라.

숫처녀의 가슴보다도 더 보드랍고 콩닥거리는 바람이 만져지지 않는가. 

처녀의 가슴을 스치고 삐져나간 몽실몽실한 연초록들이,

까칠했던 산이며 들판을 남실남실 춤을 추게 하는 풍경과 나란히 해 보라.

그리고 스치고 스치는 인연에게 다가가 뜨거운 눈 맞춤을 해 보라.

나란히 하지 않고 눈 맞춤이 없는 여행은 그냥 평범한 외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