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기쁨/조용미

[조용미]큰고니

문선정 2007. 12. 3. 20:50

큰고니


조용미

 





 

까마귀는 흰 피를 가지고 있을 것만 같다

까마귀의 피로 나는 무엇을 쓸까

검은 종이에 피보다 붉은 어떤 말을 적을 수 있을까

 

내 안에 또 무엇이 들어왔나 보다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다

수로의 버드나무들이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달빛이 물밀 듯 방 안으로 들어오는

조그만 방을 하나 가지고 싶다

그 방에(     )를 옮겨가도 좋으리라

 

눈부시도록 긴 목을 한 큰고니는

목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수면 위에 떠 있었다

슬픔 때문에 목이 점점 더 길어지는지

 

멀리 있는 큰고니를 오래 보느라

눈이 깊어지고 목이 길게 늘어낫다

하루 사이 목이 길어지고, 겨울 내내 목이 길어진다면

 

날지 않는 새가 가진 날개의 무게를

내가 대신 등에 질 수 있을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나지 못하는 슬픔이 있다

 

 

 

<조용미 시집 : 나의 별에서 핀 앵두나무는 / 문학과 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