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요, 모란
임재정
소풍 가자-
손나팔만 해도 짠! 펼쳐지는 샛길 같은 데, 뿌리채 뽑혀 와 복사꽃 살구꽃은 꽃답게 팡 팡, 한길 저쪽에 신호를 기다리며 달뜬 나비들도 많았죠
좁은 듯 넓은 모란은 아련하기가 옛이야긴데, 오른편으로 식육용 개가 왼편으론 애완용 개들이 저마다 코를 박고 킁킁거려서, 살다 사랑하다 지치면 결국 저쪽에 떠넘기나 싶어 송곳니를 으르릉대던, 우리 안의 망종이 슬그머니 꼬리를 마는 곳
이 바닥을 개들은 예전에 끄덕였으려니, 셔츠를 풀어헤친 채 널브러진 취객의 시커먼 맨발닥과 봄볕을 실랑이 중인 할머니 구부정한 걸음을
어쨌거나 복사꽃 살구꽃 사이, 오뉘처럼 잘 어울리네? 덤으로 이런 인사가 김 오르는 국수 한 그릇을 다투며 견뎌보겠는지, 애완용 꼬리를 흔들며 서로 아찔해지시겠는지 수놓은 모란 이불 아래 뿌리채 뒹엉켜보시겠는지
<임재정 시집 :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 / 문예중앙시선(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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